나의 이야기

내 친구 마포 이씨

아담kyunggs 2009. 12. 2. 12:37

초등 학교 시절 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같이 과외 공부를 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3명이 삼총사를 유리 구슬로 맺기까지 했는데

한친구는 군대를 갔다 와서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 가서 멋지게 정착을 하고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을걸로 보아

무지 바쁘던가 아니면 아직 멋진 정착을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뜬금없이 그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마포이씨가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쉽게 표현을 해 개구녕 바지였다

내가 일고 있던 그 친구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었었다

어릴때 친구의 아버지란 분은 힌의원을 하셨는데

두분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가 아이를 몰래 그집에 놓고 간겄이다

 

한의원을 하시는데 앉은뱅 병에 걸린 부자집 딸을

정성껏 보살핀 결과 정상인과 같이 걷게 되었는데

부자집에서 아마도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한의사인 친구 아버지와 결혼을 원했었는 가 보다

친구 어머니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친아들도 아닌 내친구는 어머니와 같이 그집을 나오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 시절을 지내다

나이를 먹고 어릴때 부터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있어

이리 저리 알아본 결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한의원을 한다는걸 알게 되었고

아버지를 찾아 가니 만나 주지도않고

아버지란분과 사는분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었던 거다

그러는 사이 어머님이 돌아 가시고

외가집 쪽에서도 재산이 걸린 일이다 보니

친아들이 아니니 나가라는 소리도 듣게 되어

친구는 그당시 3만원인가 30만원에 호적을 파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었나 가 보다

 

그래서 친구는 마포에 가서 호적을 정리 하는데

지금까지 쓰고 있는 성씨를 이씨로 사요을 했으니 그냥 쓰기로 했지만

본을 알수가 없어 마포이씨로 호적을 했다고 했었다

 

참으로 인생이 기구한 삶이었다

어릴때는 어머님께서 참 잘해 주셨다

뭐든 뗑깡만 부리면 다 들어 주셨었다

덕분에 나도 같이 호강을 누리기도 했었고

그렇지만 모든걸 잃고 나니 살기가 너무 힘들어 졌다

친구들 도움으로 끼니를 이어 가기도 했고

고물상에서 일을 하며 년말에 가수왕을 뽑는 우편엽서를 방솟국에서 페지로

들여온 것중 엄선하여 한장을 뽑아 팬팔을 시작 하여 부산에 있는 여자분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전국을 떠돌며 어떤때는 운산이라고 연락이 오고 어떤때는 강릉이라 연락이 왔다

그러던 중 서울 창동에서 시장 경비를 보며

작은 공간을 얻어 밥집을 했는데

그게 대박이 난거다

끼니도 못 이을 정도의 가난을 벗어나 작은 빌라도 장만 했고

이젠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호사다마라는 밀이 이럴때 쓰는게 맞을거 같다

친구의 건강이 무지 나빠진거다

살기 힘들때 건강에 너무 신겨을 안썼는지

배에 복수가 차고 간이 너무 나빠져 손을 쓸수가 없게 된거다

 

결국 40초반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친구들 중 일찍 저세상을 보내다 보니

많은 친구들이 서울 대학 병원 영안실에서 벽제 화장실로

비상 깜빡이를 키고 3,40대의 차량 행렬이

대단한 인물이 떠나 신것으로 시만들은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뭐 하겠는가?

이젠 고인이 되어 어느 누구도 만날수 없는것을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이 나 보고 싶은 마음에 몇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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